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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1 호, 남대문

sunny holidays 2022. 8. 25. 23:59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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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문

    우리 나라의 국보 제 1 호는 서울에 있는 남대문입니다. 남대문이란 남쪽에 있는 큰 문이란 뜻이지요. 이 글을 읽는 어린이들 가운데에서 서울에 사는 어린이들은 남대문을 여러 번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사는 어린이들 가운데에도 서울에 와서 남대문을 본 어린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대문을 자세히 본 어린이들도 있겠지만, 아마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무심코 지나친 어린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이라도 너무 가까이 있으면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우니까요. 어린이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서울은 우리 나라의 수도이고 인구 천만 명이 넘는 큰 도시입니다.
      

    서울이 우리 나라의 수도가 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였습니다.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고려시대에는 각기 다른 곳을 수도로 삼았지요. 그러나 한강을 끼고 있는 서울은 우리 한반도에서 옛날에도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한강 주변인 암사동 유적지에서 발굴된 신석기 시대 유적이 그것을 잘 말해 줍니다. 그 유적들은 땅에 굴을 판 움집이나 돌로 만든 연장들입니다. 올림픽 공원에 가면 신석기 시대 유적들이 전시된 것을 볼 수 있지요.
      

    또한 삼국시대에도 각 나라들은 한강을 중심으로 한 지금의 서울지역을 차지하려고 오랫동안 싸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부르는 서울이라는 이름은 처음부터 그렇게 불렀던 것은 아닙니다. 백제는 한 때 지금의 한강 지역을 수도로 정하고 한성이라고 불렀습니다.
      

    고구려 장수왕

     

    그런데 고구려 장수왕이 남하정책을 써서 475 년 한강으로 점령하고는 남평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고구려의 수도가 평양이었기 때문에 남쪽에 있는, 평양만큼 중요한 도시라고 그렇게 불렀지요. 장수왕에게 한강 지역을 빼앗긴 백제는 할 수 없이 수도를 웅진(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 통일신라 시대에는 양주목으로 삼았고, 고려 문종 때는 남경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울이 우리 나라의 수도가 되면서 가장 큰 도시로 발전하기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이지요. 조선은 1392년 태조 이성계를 왕으로 삼아 고려를 이은 나라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왕씨가 왕이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이씨가 왕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왕의 성이 바뀌어서 새 왕조가 들어선 것을 '역성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왕이 된 태조 이성계는 1393년, 그러니까 왕이 된 이듬해에 나라이름을 조선으로 바꾸고 수도도 옮깁니다. 고려 시대의 수도였던 개성에서 한양으로 말이지요. 물론 한양은 지금의 서울입니다. 조선시대 한양은 경도라는 다른 이름이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경성부로 부르기도 했다가 해방 뒤부터 지금처럼 서울로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한 지역의 이름에도 역사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이 이름이 바뀌는 것을 살피면서 알 수 있듯이, 서울이 우리나라의 중심 도시가 된 것은 조선시대부터라고 봐야겠지요. 따라서 지금 서울에 있는 여러 옛 건물이나 유적들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 됩니다. 국보 제 1호인 남대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왕궁을 짓고 성곽을 쌓고 문을 만든 것이 남대문이지요.

     

     

    조선 태조

     

    남대문은 태조 5 년(1396 년)에 처음 만들었고, 세종30 년(1448 년)에 지금과 같이 더욱 크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서울에는 동, 서, 남, 북 네 방향으로 네개의 큰 문이 있었지요. 남쪽의 남대문, 동쪽의 동대문, 북쪽의 숙정문, 서쪽의 서대문이 그것들인데 서대문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남대문은 지금 남아 있는 세 개의 큰 문 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큽니다. 또한 우리 조상들의 빼어난 건축 솜씨가 잘 나타나 있기도 합니다. 국보 제 1 호로 삼은 큰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일단은 봐야겠지요.
      

    그러나 단순히 그렇게 봐서만은 안 됩니다. 우리 조상들이 문을 정성스럽고 웅장하게 만든 뜻을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은 우선 사람이나 동물, 물건들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성벽이나 담을 쌓아 안과 밖을 구분하고 문을 통해 드나드는 것이지요.
      

    지금은 도시를 성벽으로 둘러쌓는 일은 없어졌지만 우리가 사는집은 여전히 담을 쌓고 문을 만듭니다. 이런 문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사용하는 실제적인 문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문이라는 말에는 다른 뜻도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지나가야 할 중요한 고비를 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어린이 여러분도 앞으로 여러 문을 거치면서 어른이 되고,자기가 세운 목표를 향해 나갈 것입니다. 그럴 때의 문이란 말은비유적인 뜻을 갖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비유적인 뜻의 문은 실제적인 문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쓰기 시작했다고 보면 될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문을 웅장한 예술품처럼 솜씨있게 만든 데에는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단순히 드나드는 건물이 아니라 그 앞에서 몸을 가다듬고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뜻 말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중요한 고비나 인생의 문을 지날 때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정성을 다해야 하듯이 말이지요. 어린이 여러분도 그런 정성으로 힘을 다할 때 여러 인생의 문을 잘 지나서 여러분의 길을 힘차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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